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트남 전쟁/한국군 (문단 편집) === 북한의 베트남 전쟁 파병 === 2000년 4월 13일, 연합뉴스 하노이 특파원 권쾌현 기자에 의해 베트남전 북한의 참전이 확인됐고, 베트남 정부가 이 기사에 대해 북한의 베트남전 참전 사실을 시인하면서 베트남전 종전 25년 만에 북한의 참전이 확인됐다. [*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925]]] 북한의 군대 파병에 대한 정치적 명분은 냉전적 요소가 짙었다. 사회주의 나라들을 단결시키고, 미국의 힘을 약화하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는 김일성의 발언들로부터 확인해 볼 수 있다. 하나의 예로 김일성은 1997년 10월 19일 제203 군 부대를 찾아 비행사들에게 파병이 '숭고한 국제주의적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북베트남은 당시 중소 갈등으로 인해 많은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는데, 김일성은 북한이 북베트남에 파병함으로써 사회주의권을 자극하고 단결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바랐다. 냉전적 요소 외에도 '북한과 북베트남의 친밀함'이 파병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양국은 한국전쟁 직전까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고, 한국전쟁 이후에도 관계를 계속해서 발전해 왔었다. 하지만 북한의 정치적 명분만을 가지고 해외 파병을 하는 것은 타당치 않았다. 국제관계 속에서 '해외 파병', 그리고 특히 전투 병력 파병이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다. 따라서 북한도, 북베트남도 서로의 필요성이 대두돼야 했다. 이 필요성은 북한의 공군 전력과 북베트남의 공중전 상황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베트남 전쟁의 주전장은 남베트남지역이었지만, 미국은 1965년 3월부터 북베트남 지역에 공중폭격을 가하면서 북베트남 지역을 '공중전장'으로 만들었다. 북베트남은 이에 반격할 수 있는 공군력의 수준은 절대적 열세에 놓여있었다. 소련과 중국은 항공기만 지원할 뿐, 전쟁의 확전을 우려하며 조종사를 파병하지는 않았다. 소련 지도하에 조종사를 양성하고 있기는 했지만, 당장 싸울 수 있는 인력은 없었다. 반면 북한은 한국전쟁을 미리 겪으면서 공군이 형성됐었고, 이들의 전력을 소련과 중국의 지도하에 키우고 있었기에 상대적으로 높은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 전력은 '양'적으로 높았지만 '질'적으로는 아직 낮은 수준이었지만 북한이 한국전쟁 당시 미 공군과의 실전경험이 있다는 점과 공군 전력이 높다는 점만으로도 북베트남에게는 매력적인 요소였다. 결국 북한과 북베트남은 공감대를 형성했고, 북베트남의 요청으로 북한은 베트남 파병을 결정하게 된다. 파병에 대한 시기와 규모는 모두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북한의 베트남 파병에 대한 구체적인 요소들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연구조차 힘든 상황이다. 북한과 베트남이 2000년 이전까지 사실을 숨겼으며, 자료도 구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탈북조종사들의 증언과 베트남 측 자료, 북한 측 자료가 상이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더더욱 힘든 상황이다.[* 이신재. (2016). 북한공군의 베트남전쟁 참전. 현대북한연구, 19(3), 6-51.] 이외에도 북한의 베트남 전쟁 참전 의도는 다양하게 분석된다. 조선혁명 승리를 앞당기기 위한 것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중소 분쟁]] 당시 독자적인 외교 노선을 구축하고 반미 공동투쟁을 촉구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하는 사람도 있다. 한편 북한의 파병을 당시 급변하고 있는 세계 정세, 중소 분쟁 격화, 사회주의 진영 분열 심화, 한미일 삼각동맹 출현, 일본 군국주의 부활 등으로 인해 위기감을 느껴 방어적인 대응책으로써 선택한 정책이라는 분석도 존재한다.[* 김진환. (2015). 베트남전쟁 시기 북한의 대외정책. 사회와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105, 41-70.] 대외적으로 2000년대까지 베트남 전쟁 참전 사실은 숨겼던 북한은 2000년대 이후로 참전 사실이 밝혀지자 이를 다시 숨기지 않고, 베트남과의 외교적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활용했다. 북한은 외부에 공개되기 전부터 대내적으로 베트남 전쟁광을 개설, 참전 조종사 강연 개최 등 참전 사실을 교육하기 시작하면서 '''[[선군정치]]'''의 '성공 사례'로서 활용했다고 알려졌다.[* 이신재. (2016). 북한공군의 베트남전쟁 참전. 현대북한연구, 19(3), 6-5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